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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1-07-19 21:08
♬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Recuerdos de la Alhambra)| 타레가
 글쓴이 : 岳童
조회 : 3,116   추천 : 0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 타레가

프란치스꼬 타레가 Francisco Tarrega Eixea (1852∼1909)





클래식기타연주



Sarah Brightman



이 곡의 작곡자인 타레가는 제자인 콘차 부인으로부터 사랑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아픔을 안고 여행을 하던 중에 알함브라 궁전을 찾게 되었다. (타레가에 관해서는 다른 글 참고.) 일설로는 콘차 부인과 궁전에서 같은 밤을 보냈다고도 하는데, 아무튼 그 여인으로부터 사랑의 상처를 겪은 것만은 틀림이 없다. 이 세상에 사랑하는 여인이 있는데, 그 여인으로부터 사랑을 허락받지 못할 때 그 무엇으로 빈 가슴을 메울 것인가. 아름다운 궁전 창 밖의 달을 보며, 그는 그 상심을 가단조의 우수(憂愁)로 시작한다. 전 곡을 걸쳐 마치 은구슬 뿌리듯 관통하고 있는 트레몰로(Tremolo)의 멜로디와 강약을 교차하는 3박자의 저음 아르페지오...


기타 음악으로서는 로망스와 함께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곡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Recuerdos De La Alhambra)은 에스파니아의 전설적인 기타리스트인 타레가의 작품입니다. 전통적으로 기타음악이 강세를 보이는 에스파니아에서도 이 음악은 클래식 기타의 표본이라 불리울 만큼 최고의 작품으로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




알함브라 궁전은 스페인의 대표적인 유적지의 하나입니다. 그라나다(Granada)에 위치한 이 궁전은 해마다 수십만의 인파들을 끌어 모으고 있습니다. 관광객의 대부분은 타레가의 기타음악에 대한 호감을 가지고 이 곳을 여행합니다. 무어족의 유적지로 알려진 알함브라 궁전은 한때 유럽을 호령했던 무어인들의 자취를 느끼게 해 주는 대형 건축물입니다.


알함브라 궁전을 여행하는 사람들은 먼저 그 호젓함과 공간의 미에 감탄을 하게 될 것입니다. 언덕위에 자리한 그 건축물의 쓸쓸함에 애수를 느끼게 될 수도 있습니다. 1238년에 완성된 것으로 알려지는 이 궁전은 당시 건축 자체의 웅장함과 예술성만을 꾀하는 여타의 유럽의 건축물과는 달리 조경과 주위 풍경과의 배치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것이 특징이 있습니다. 여백의 미를 중시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더욱 사랑을 받는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타레가는 근대 기타연주법의 틀을 완성한 전설적인 기타리스트입니다. 사망하기 3년 전에 팔이 마비되는 병을 앓고 난 후 더이상 기타를 연주할 수 없게 되자 이를 비관하며 슬픈 말년을 보냈다고 합니다. 타레가의 음악은 지금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으며 특히 팝에서는 최고의 소재중의 하나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영화 킬링필드(The Killing Fields)에서 그의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을 주제로 한 에뛰뜨(Etude;습작?)가 1984년 오스카의 주제가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이슬람예술의 최고의 극치를 보여준다는 알람브라궁전이 이슬람교도 국가가 아닌 스페인 땅에 있다는 것은 참 아이러니하다. 현재 스페인 지역에 있었던 서고트왕국은 711년 이슬람 옴미아드왕조의 침입을 받아 붕괴되었다. 이슬람 세력은 피레네를 넘어 프랑크왕국도 노렸으나 732년의 투르푸아티에 싸움에서 패배하여 이베리아반도로 물러났으며, 그 후부터 8세기 동안 이베리아반도를 지배하였다. 이슬람이 지배하는 동안 산업이 발전하였는데, 당시의 이슬람의 문화·기술 수준이 서유럽을 능가하였다는 것은, 이미 10세기에 코르도바 도서관이 60만 권의 서적을 소장하여 그리스철학을 연구하고 있었다는 점, 11세기에 제지(製紙)가 시작되어 있었다는 점 등으로도 알 수 있다.


스페인의 남쪽인 안달루시아 지방의 그라나다를 한눈으로 바라보는 구릉 위에 세운 알람브라궁전은 스페인의 마지막 이슬람왕조인 나스르왕조의 무하마드 1세 알 갈리브가 13세기 후반에 창립하기 시작하여 증축과 개수를 거쳐 완성되었다. 나스르왕조는 이베리아반도에 존재하였던 이슬람 최후의 왕조(1231~1492)로 이베리아반도에서 이슬람 세력을 내쫓으려는 그리스도교의 국토회복운동에 의해 영역을 잃어가다가 이사벨 1세와 페르난도 5세의 가톨릭 부부왕(夫婦王)에 의하여 1492년 정복되었다.


'중세 이슬람 문화의 결정체', '이슬람 건축의 최고 걸작' 등으로 찬사를 받고 있는 알람브라궁전은 그러한 찬사가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화려함을 자랑한다. 하지만 다른 유럽의 궁전들처럼 거대함, 보석장식, 그림장식 등으로 화려함을 뽐내는 것과는 다른 모습이다. 우상숭배를 금지한 이슬람 교리에 따라 내부 장식을 식물과 기하학적인 디자인으로만 구성하였기 때문에 소박하지만 환상적인 모습으로 관광객들을 압도한다. '아벤세라헤스의 방', '왕의 방', '두 자매의 방'에서 볼 수 있는 모사라베라고 부르는 종유석 장식과 왕의 공식 접견실인 '대사의 방'의 아라베스크 무늬에서 이러한 모습을 볼 수 있다.


또한 물이 귀한 땅(아프리카, 중동)에서 살아온 이슬람교도들의 오아시스에 대한 열망은 곳곳에 연못과 분수를 만들어 놓았다. 왕의 여름 별궁인 헤네랄리페에서는 아치형으로 물을 뿜는 분수와 아담하지만 아름다운 정원을 볼 수 있다. 알람브라궁전에서 가장 뛰어난 중정(中庭)으로 손꼽히는 왕궁의 아라야네스의 안뜰은 정확한 대칭구조를 이루는 건물 중앙에 사각형의 연못이 있다.


나스르왕조의 마지막 왕인 보압딜(Boabdil)이 두 왕(이사벨 1세와 페르난도 5세)에게 도시를 넘겨주는 조약을 맺은 후 아프리카로 떠나면서, 알람브라궁전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는 곳은 '한탄의 언덕'이라고 부르고 있다. 영토를 정복당한 슬픔이 우선이겠지만 낙원 같은 알람브라궁전을 놓고 떠나는 마음이 오죽했을까?




알함브라 궁전과 타레가


그곳은 황홀한 세계였다. 인간의 손길이 얼마나 섬세할 수 있는지 그 실재를 보여주는 그런 곳이었다. '알함브라 궁전'의 수많은 기둥과 벽, 그리고 천장은 아라베스크 문양과 아라비아 서체의 코란 글귀들로 빈틈없이 장식되어 있었다. 여기에 각 부분에는 알맞는 색채까지 곁들여 황홀한 경지를 연출하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의도로 그랬단 말인가. 또 그런 신기는 어떻게 터득했단 말인가.


알함브라 궁전이 있는 그라나다(Granada)는 스페인의 남부 안달루시아주에 있다. 그곳에는 영화 '닥터 지바고'를 촬영했던 흰눈이 1년 내내 머무는 높은 시에라 네바다 산맥이 있다. 이 산맥을 이루는 작은언덕, '세로 델 솔'(태양의 언덕)위에 배 모양을 한 작은 대지가 바로 궁전의 터다. 궁전은 한쪽으로 알카사바 요새, 다른 한쪽으로는 정원이 딸린 헤네랄리페란 이름의 여름궁전을 거느리고 있다. 태양의 언덕 아래로는 작은개울 '다로'가 흐른다. 개울 너머의 작은 언덕위에는 하얀색 집들이 들어서있다.



알함브라궁전 건축의 특징은 빛과 어둠(그늘)의 적절한 대비다. 밝은 곳은 더욱 밝게, 어두운 곳은 더욱 어둡게.... 이를 위해 외부의 빛을 매우 교묘하게 활용하고 있다. 사자의 분수 옆으로 나있는「왕의 방」과「두 자매의 방」은 그 대표작이다. 겹쳐서 있는 아치형 문의 장식은 바깥에서 들어오는 빛으로 더욱 화려하게 빛나고 빛의 사각지대인 벽면은 어둡다. 아치형 문으로 들어온 빛은 다시 천장으로 건너 간다. 천장은 평면이 아니라 요철이다. 그 문양은 마치 벌집을 연상케 한다. 높낮이가 다른 벌집들(이를 종유석 장식이라고도 부른다)이 그 빛을 받아 실내를 밝힌다. 샹들리에는 여기서 시작된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해 본다. 그때서야 벽면의 장식이 서서히 눈에 들어오는 것이다. 이 기막힌 빛의 처리....


이슬람 건축에선 인물이나 동물문양은 장식으로 사용하지 않는다. 대신 식물과 기하학적 문양을 개발했다. 그들이 사는 땅은 물이 귀했던 관계로 항상 풀과 나무 즉 식물이 자라는 오아시스를 그리워 했으리라. 그래서 집을 짓더라도 시선이 머무는 곳에는 오아시스를 상징하는 식물을 그렸고 장소가 허락한다면 연못과 분수를 세웠다. 실제로 분수와 가로수는 고대 페르시아가 그 원산이다. 린다하루 망루로 나가면 알바이신이 시원스럽게 펼쳐진다. 그리고 잘 가꾸어진 정원을 지나면 헤네랄리페가 나온다. 헤네랄리페가 가까워지면서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의 기타선율이 흘러내리는 듯 하다. 그곳 정원에 있는 많은 작은 분수들이 내뿜는 물방울이 수면 위로 떨어지면서 나는 소리가 그렇게 들렸다.


알함브라의 건축은 과거의 어느 특정시대의 건축물로 머물지 않고 후대의 건축물과 끊임없이 교감하고 있는「살아있는 건축」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참다운 문화유산이란 진정 이런 것이 아닐까.

조선일보 펌


여명 11-07-27 13:48
 
좋은 상식이 새겻네요,,,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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